친구의 당근 케이크를 먹고 많이 걷느라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다. 그래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써보는 오늘의 내 일기.
최근 나 스스로도 많이 뻔뻔해졌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오늘만해도 목욕탕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나 아주머니에게 손녀인 듯 딸인 듯 행동하고 오늘의 나를 생각해보니 참 어이 없고 웃기고 감동적이다. 왜냐면 유독 난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두려워하고 무슨 말만 하면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지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그날의 날짜에 따라 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으키고 교과서를 읽히게 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은근히 반에서 왕따여서 유독 소심하고 우울한 내가 국어 시간에 책을 읽다가 계속 버벅거리는 일이 한 번 있었다. 그 당시 내 버벅거리는 행동에 반 아이들 몇 명은 웃고 선생님은 듣다가 다른 아이에게 읽히게 했다. 그 학기의 성적표와 생활기록부는 내 1~6학년 중 가장 최악이었고 그게 나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가 돼 그 뒤 고학년이 되서도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특히 내가 답을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선생님이 너무나도 밉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이런 내 모습은 나의 행동의 악순환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신 없는 모습, 말이 없어지기 시작하고 움추려드는 어깨 그리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를 마주 보는 걸 싫어했다.
그 덕에 점점 난 나의 고통인 실수와 부끄러움을 벗어 나기 위해 가면과 포장지를 쓰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만드는데 한 몫했을거다.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는 과정(19.06.08)
언제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너 혹시 게으른 완벽주의자 아니야?' 그 말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두고 한참을 멍하니 생각했었다. 어릴 때 오빠를 따라서 게임을 자주 했었다. 특히, 삼국지 3을 정말 좋아했는데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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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게 성공했는지 5,6학년 때는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내 방식이 잘못된 지도 모르고 '이게 맞나봐.'라는 생각으로 계속 스스로를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철없는 나이에 딱 맞는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까지 반 아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면 얼굴이 벌게졌고 집중 받는게 힘들었으며 언제는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답을 못해서 집에서 조금 울기도 했다. 결국 그 과정의 끝인 대학 면접에서는 허리가 아플 정도로 긴장을 해서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짠한 과거의 나.
다행히 가면과 포장은 대학교 1학년 때 한 사건으로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화가 나는데 나에게 변화를 줬던 큰 사건이라 고맙다고 해야할 지 아니면 아이러니한 감정이 든다. 그 친구는 팀 과제를 할 때 무임승차를 했었다. 그 당시 발표 PPT를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그 이유는 위에서 봤듯 누구 앞에 설 수도 없고 그 자체가 나에게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고통을 맞설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선택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 PPT만 만들면 완벽하겠지 싶었다. 그리고 발표 당일 그 친구가 '미안한데 나 독감 걸려서 못할 것 같아. 말을 못할 정도로 아프네. 너가 발표 좀 해주라.' 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수업 2시간 전에. 오싹한 과거다 정말. 갑자기 발표 하는 나와 마주보게 됐고 도서관에서 그 2시간동안 집중해서 대본을 만들고 연습을 했다.
그 결과? 당연히 망쳤다. 대본을 뽑고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 내가 잘 읽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집중을 못했고 내가 들고 있는 대본은 수업 듣는 학생들이 웃을 정도로 떨리는게 보였고 얼마나 심했으면 교수님도 너무 긴장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 경험을 통해서 나를 마주보게 됐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이건 고쳐야겠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걸 이겨낼 수 있는지 고민과 이겨낼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다음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