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너 혹시 게으른 완벽주의자 아니야?'
그 말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두고
한참을 멍하니 생각했었다.
어릴 때 오빠를 따라서 게임을 자주 했었다.
특히, 삼국지 3을 정말 좋아했는데 좋아했던 이유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에디터로 게임 내에서 가장 강하고 뭐든 잘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공부도 잘 못하고 사교성도 부족했던 내가 보기 싫어서 게임에 더욱 빠졌었다.
내가 뭐든 다 잘 해내는 그 우월감과 즐거움은 마치 마약과 같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말만 들으면 너무나 완벽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을 하나라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순간부터 내가 생각했던 완벽함에 맞지 않아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이 부족한 완벽주의는 결국 현재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만들기에 너무 완벽한 과정이었다.
어린 난 내가 언제든 나서면 뭐든 다 잘한다는 생각은 했었다.
게임과 만화에 빠져서는 유독 나 자신을 특별하다 생각했다. 나도 그 주인공처럼 그런 사람일 거야! 하고..
그 생각은 당연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밖에 없는
나 자신을 인생의 주인공처럼 거짓말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만화를 읽었을 때
누가 뒤통수에 주먹을 딱 날리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 읽는 어린 왕자와 어른이 되고 나서 읽는 어린 왕자가 다른 것처럼.
만화책의 주인공들이 원래부터
다 잘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 모두가
대부분은 노력으로 성장한다는 게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주인공은 그래서 주인공이었다.
난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바빴지
인정하기는 싫어했다.
난 결국 만화책의 주인공, 그 친구도 아닌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항상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의 모습만 남았었다.
열등감과 부족함만 남은
내 껍질이 너무나도 싫어서 그 당시
' 난 왜 이런 사람이지? ' 싶어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이러다가 난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고 하나씩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 버릇 어디 안간다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시작했던
심리학 책 읽기는
겉멋이 들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
독서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변치 않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고등학생은
어른의 삶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었다.
졸업에 가까워진 나는 벼락치기로 여태 준비하던 자격증 공부를 몰아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친구가 '이거 완전 우리 아니야?ㅋㅋㅋ'라고
보내준 '게으른 완벽주의자 특징'을 읽다가 그 글에서 나를 마주 보게 되었다.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숨겨둔 내 치부를 긁어서 전시해놓는 느낌이라 그 글을 저장해놓고 새벽에 반복해서 읽었었다. 그 때는 그랬었다.
음..졸업한 지 조금 지나도 변하지 않은 내가
과거의 나를 들먹이며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이 글을 적은 이유는
20 몇 년간 이렇게 살아온 내가
쉽게 바뀔 리가 없지.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산다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찾는다면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바뀔 거야 라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오늘도
거짓말 안하는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나.
열정이 있는 나.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아닌 나를 꿈꾼다.
+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를
생각하게 했던 웹툰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16883